홍설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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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9-03 10:42 조회2,06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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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 | 전라남도 | 시·군 | 담양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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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설초 | |||
성명 | 고광천 | 연락처 | 010-4641-5088 |
귀농연도 | 2019 | 품목 | 딸기 |
귀농 전 거주지역 | 수북 | 귀농 전 직업 | 회사원(법무사) |
개요 | 0 귀농 동기 : 이기적이고 메마른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인간미를 느끼며 살고 싶어서. 0 선택 작목 : 딸기 0 귀농하기까지의 과정 : 광주에서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무장으로 근무했다. 변호사를 찾는 분들 대부분이 분쟁 때문이었다. 어쩌다 지인들이 오기도 했지만 그건 채 1퍼센트도 되지 않았다. 해서 상대를 법적으로 어떻게든 짓밟으려는 사람들을 매일 만나야 했다. 정말 억울해서 오신 분들의 얘기는 들어줄만했는데 재산 관련이나, 법을 악용해 상담하는 분들과의 대화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고객으로 왔으니 어쨌든 그들 편에 서야 했다. 열심히 준비해서 승소를 하면 거의 대부분은 형식적인 인사에 그쳤다. 집에 돌아와도 사무실에서의 그림자가 지워지지 않았다.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니 밝은 얼굴이 아니었음은 당연했다. 피폐한 내 가슴은 이웃들을 친근하게 대하는 여유가 부족했고, 그런 내 모습에 이웃들 또한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쳐도 눈인사로 그치는 게 태반이었다. 한마디로 닫힌 공간에서 닫힌 생활을 했다. 그런 생활에 염증을 느껴 담양으로 귀농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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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요인 | 0 겨울이면 절임배추를 하고, 딸기 철이 끝나면 딸기 홍초를 생산한다. 입소문이 나야 판매로 이루어지는데, 그 시작은 이웃 주민들이였다. 주민들이 발 벗고 홍보에 나섰다.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0 동네 분들에게 살갑게 다가갔다. 도회지에서의 내 모습과 농촌에서의 내 모습이 백팔십도 달랐다.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이웃과 교류도 없이 쫓기듯 바쁘게만 살아온 지난날들이 생각나 치를 떨었기에, 만나는 사람마다 고개를 숙였다. 웃는 얼굴에 침 뱉지 못하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다가가니 진정으로 대해줬다. 그렇게 귀농생활을 위해 스스로를 발효했다. 앞뒷집을 자주 드나들었고, 이장님과도 허물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인사할 때마다 활짝 웃었던 탓에 얼굴에 잔주름만 깊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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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착 시 애로사항 및 문제해결 | 0 위기를 겪은 경험이 아직은 없다. 인간 관계에 염증을 느껴,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진심을 대한 것이 도움이 되었다. 제대로 된 딸기 홍초를 생산하려면 항아리에 30일 정도는 충분히 발효시켜야 한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이다.발효를 전통 방식대로 하려고 항아리에 발효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 방법은 오로지 수작업으로만 가능한 일이었다. 일손이 단 기간에 집중적으로 필요했다. 그때 일손에 여유 있는 분들이 마치 내 일처럼 거들었다. 사람 사는 것 같았다. 도시에서 느껴보지 못한 경험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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