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꽃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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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9-02 13:40 조회2,15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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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 | 전라남도 | 시·군 | 담양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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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꽃벵이 | |||
성명 | 전성자 | 연락처 | 010-8964-4118 |
귀농연도 | 2015 | 품목 | 꽃뱅이 |
귀농 전 거주지역 | 금성면 | 귀농 전 직업 | 담양군 |
개요 | 0 귀농 동기 : 남편의 고향이 담양군 금성면인데 노년을 고향에서 봉사 겸 농사를 지으며 보내고 싶다해서 흔쾌히 따라나섰다. 0 선택 작목 : 꽃뱅이 0 귀농하기까지의 과정 : 수구초심이라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남편이 고향을 그리워했다. 젊어서 누렸으니 농사로 몸도 가꾸고 베풀며 살자는 말에 혹해서 따라나섰다. 서울에서는 스포츠댄스와 골프를 즐겼는데, 농촌으로 가면 그런 생활을 포기해야 한다는 안타까움도 있었다. 하지만 취미생활보다 남편이 더 소중하기에 군소리없이 따라나섰다. 남편은 귀농해서 송화버섯을 재배하려고 전문가를 찾아다니며 버섯 공부에 열을 올렸다. 남편의 열정을 보니 귀농해도 안전적으로 정착할 것 같아 선택을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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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요인 | 0 남편은 계획대로 버섯을 재배했다. 송화버섯이었다. 어떤 작물이든 부산물이 나오기 마련이다. 송화버섯도 마찬가지였다. 상품으로 낼 수 없는 버섯을 버리기에 너무 아까웠다. 사람이 먹어도 좋은 고급 버섯을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폐기한다는 게 속 상해, 이런 부산물을 좀 더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다. 그러다 꽃뱅이를 생각했다. 송화바삿을 사료로 먹인다면 품질이 뛰어날 것 같았다. 0 송화버섯을 사료로 키운 꽃뱅이를 지인들에게 나누어주었다. 효과를 직접 경험하게 하고, 입소문도 내잘라는 요지였다. ㅃㅊ뱅이는 특성상 짧은 기간에 효과를 체험하기 어렵다. 몇 분에게 꾸준히 공급을 했더니, 드디어 반응이 나타났다. 효과가 대단하다며, 앞으로는 사서 먹을 테니 꾸준히 공급해달라고 했다. 0 뜻박의 반응에 자신이 생겼다. 본격적으로 사육하고 싶은 의지가 끓어 넘쳤다. 말년의 효자가 될 것 같았다. 남편과 의기투합하여 연구실을 만들었다. 다양한 환경과 사육에 대한 실험을 곁들였다. 그런 과정을 거치다보니 제품성이 향상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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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착 시 애로사항 및 문제해결 | 0 남편의 고향이라 특별한 애로사항은 없었다. 다만 지인이 없어 외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초기에는 귀농을 엄청 후회했다. 누구에게 베푼다는 것을 꿈도 꾸지 못했다. 그저 진솔하고 진심으로 마음을 전하려고 했다. 내가 마음을 열면 주변 사람들도 마음을 열 것이라고 보았다. 시댁의 시자만 들어가도 어려웠기에 묵묵히 노력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생각처럼, 다짐처럼 농촌 삶이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한숨을 내뱉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어느 순간 머리에 번뜩이는 게 있었다. 정말로 내가 베풀려는 자세로 살고 있는 게 아니라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했다는 것.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마음을 비우니, 이웃이 가깝게 느껴지고, 사람들이 귀하게 보였다. 자연히 유대관계가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0 식물이든 동물이든 오랜 기간 기르다 보면 정이 들 수밖에 없다. 굼벵이를 사육하다 보니 굼벵이에 푹 빠졌다. 취미였던 스포츠댄스는 잊은 지 오래다. 건강을 위해 스포츠댄스 학원에 매일 드나들었던 그때보다 나이가 더 들었는데도 지금의 건강이 더 좋다. 녀석들에게 무엇을 먹여야 튼튼한지 생각하고 깨끗한 먹거리를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실험한 것이 나를 젊게 했다. 거울을 보면 예전과 다르다. 화장을 진하게 하지 않아도 윤기가 흐르고 탄력이 느껴진다. 아마 굼벵이 때문일 것이다. 해서 나는 녀석들을 함부로 부를 수 없다. 녀석들은 굼벵이가 아니고 꽃벵이다. 나의 또 다른 자화상이다. 나를 관리하듯 녀석들을 관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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