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농장(전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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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9-02 16:21 조회1,85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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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 | 전라남도 | 시·군 | 담양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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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농장(전주현) | |||
성명 | 전주현 | 연락처 | 010-2888-2480 |
귀농연도 | 2020 | 품목 | 한우 |
귀농 전 거주지역 | 담양읍 | 귀농 전 직업 | 회사원(유통회사) |
개요 | 0 귀농 동기 : 담양으로 귀농한 건 아버지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한우를 사육했다. 한우를 키워 자식들 가르치고 분가까지 시켰다. 아버지에게 한우는 주춧돌과도 같았다. 하지만 나이 때문에 주춧돌을 계속 안고 있기에 버거움을 느꼈다. 축사를 접으려고 나에게 의사를 물었다. 만약 내가 승계할 생각이 없으면 팔겠다고 했다. 내가 승계했으면 하는 마음을 언뜻언뜻 비쳤다. 팔기 싫어하는 마음을 읽고 귀농했다. 0 선택 작목 : 한우 0 귀농 과정 : 귀농 전 창원에서 살았다. 창원에 둥지를 틀게 된 것은 회사 때문이었다. 유통회사에 근무했는데 수시로 발령이 났다. 전국이 근무지였다. 제주도나 부산에서 생활한 적도 있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발령이 나면 어쩔 수 없이 터전을 옮겨야 했다. 가장이 옮기니 아내와 자식들도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생활이 지긋지긋한 모양이었다. 담양으로 귀농한다고 하자, 아내와 자식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혼자 가라고. 창원에서 어렵게 인맥을 형성했는데 담양에서 또 다시 인맥을 형성하기 싫다는 아내와 학교생활에 겨우겨우 적응했는데 또 전학가기 싫다는 자식들. 가족들은 당장 담양으로 오기를 꺼려했다. 가족들을 끈질기게 설득할 명분이 없었다. 담양에서 행복한 생활을 할 거라고 자신할 수 없었다. 나야 고향으로 돌아가니 행복을 느끼겠지만 가족들은 그게 아니지 않은가. 어쩔 수 없이 혼자 담양으로 귀농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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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요인 | 0 성공이라고 말할 수 없다. 성공을 위해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귀농한 지 6개월째고, 멘토님께 기술을 배우고 있으니 초보 중의 초보인 왕 초보 농사꾼이다. 누가 물으면 농부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다. 도움이 된다면 뭐든지 배워야 하는 시기다. 요즈막 아침을 먹고 나면 멘토 농장으로 출근한다. 멘토는 한우를 40년 키워 오신 베테랑이다. 40년 동안 산전수전 다 겪으셨단다. 산우 파동도 여러 번 경험했고, 황금기를 보내기도 했다. 지금도 지인들에게 소를 키우라고 권유한단다. 그런 멘토께서 열과 성을 다해 지도해주신다. 노하우는 물론 흐름과 변화에 대처하는 방법까지 귀뜸해 주신다. 마치 자식에게 알려주신 것처럼 말이다. 멘토의 한 마디 한 마디를 가슴에 새기는 중이다. | ||
정착 시 애로사항 및 문제해결 | 0 귀농 후 생활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육체노동을 한지 너무 오래 되어 농장일 하나하나가 힘들었다. 힘 들 때 곁에서 응원해줄 이가 없다는 사실에 심리적으로도 위축되었다. 그렇다고 역귀농 할 수 없었다. 돌아간들 하루나 이틀은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겠지만 그 후로는 일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더 괴로워할 게 뻔했다. 역귀농을 아예 포기하자 희한하게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었다. 소들이 가족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힘들게 여겼던 노동이 할만 했다.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피로도가 극명하게 갈린다는 사실을 절실히 체험했다. 이제는 어떤 일도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농사는 어떠냐고 물었다. 전화 할 때마다 묻는 질문이지만 대답은 확연하게 달라졌다. 처음에는 힘들어 죽겠다고 했다. 시간이 흐르자 참을 만 하다고 했다. 더 흐르자 완전히 적응했다고 했다. 방금 전 통화에서 아내에게 하는 대답은 1초의 고민도 없었다. 아내가 귀농한 걸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기에, 진즉 할 걸 왜 이제야 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아내가 되물었다. 정말이냐고. 의외라는 어조였다. 내가 만족해하는 모습에 아내 목소리가 달라졌다. 남편 곁으로 빨리 가야하는 고민이 담겨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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